분양가를 낮추어서 집값 폭등을 잠재우려고 했던 방안들은 그 나름대로 ‘일정한’ 의미를 갖고 있었지만, 부동산 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다. 여기서 ‘일정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는 것은 신규 주택의 분양가가 주변 기존 주택의 가격을 선도하는 기능을 어느 정도 발휘했고, 또 시장 참가자들의 미래 집값에 대한 기대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분양가 인상은 부동산 투기와 부동산값 폭등의 근본 원인이 아니다. 건설업체가 부당하게 분양가를 끌어올려 폭리를 취하기 때문에 부동산값이 폭등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었다. 투기로 인해 부동산값이 폭등했기 때문에 건설업체들이 분양가를 끌어 올릴 수 있었고, 어려움 없이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폭리를 취할 수 있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게다가 연간 신규 주택 공급량이 전체 주택 재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전체 주택 재고에서 신규 주택 공급량이 차지하는 비중 은 3퍼센트에도 못 미친다고 하는데 여기서 결정되는 가격이 전체 주택의 가격을 좌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2002〜2006년 사이에 아파트값이 폭등한 것은 건설업체들이 신규 주택의 분양가를 마음대로 끌어올렸기 때문이 아니라, 주택 공급에 비해 주택 수요가 갑자기 많아졌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주택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실수요에 투기적 가수요가 가세하기 때문이다. 주택 공급은 가격의 변화에 둔감하고 단기간에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택 공급에 비해 주택 수요가 갑자기 많아지는 현상은 공급이 아니라 수요, 특히 투기적 가수요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2000년대 초에는 전 세계적인 과잉 유동성, 유례없는 저금리 정책, 투기 방지 장치의 부재 등 투기적 가수요가 발생하고 팽창할 조건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때 발생한 투기적 가수요가 2002〜2006년 사이에 일어난 부동산값 폭등의 진정한 원인이다. 위에서 신규 주택 분양가가 주변 기존 주택의 가격을 선도하는 기능을 어느 정도 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투기적 가수요가 존재할 때의 이야기다. 투기적 가수요가 없으면, 가격 선도는커녕 아예 분양가의 대폭 인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부동산값 폭등을 야기하는 투기적 가수요는 시장 내에서 발생하는 ‘승자의 저주’와 같은 현상으로 인해 자체 소멸할 수도 있고, 정부 정책에 의해 조절될 수도 있다. 정부가 투기적 가수요 조절에 실패하면 ‘거품의 형성과 붕괴’가 불가피하다. 정부가 할 일은 직접 집값을 놓고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투기적 가수요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다. 스티글리츠의 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가격규제를 통해 집값을 잡으려는 것은 시장과 대적하는 정책이고, 투기적 가수요를 조절하여 집값을 조절하려는 것은 시장의 힘을 이용하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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