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수치화한 능력의 문제점

김경훈 2021. 10. 3. 18:20

교육에서 학력 평가가 능력 평가로 전화되는 과정도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대입 학력고사는 본래 198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 엘리트를 해체하고 민심을 달래기 위해 과외 금지 조치와 함께 도입한 제도였다. 학력고사 제도는 1993년 대학수학 능력시험으로 바뀌고 이후 입학 사정관제와 학교생활기록부 종합 평가가 도입되면서 종합적 능력 평가가 시작된다. ‘학력에서 능력으로의 변화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획일적인 점수 평가가 아니라 전인적 평가를 하겠다는 말은 겉으로는 좋아 보였지만 결국 인성, 성실성, 리더십, 창의력, 개성과 잠재력까지 모두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능력에 대한 종합적 평가라는 것은 능력주의 신화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제도적 장치였다. 개성과 인성까지 평가할 수 있으려면 지표화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수량화가 필수적이다. 출석 일수가 성실함의 지표가 되고, 봉사 활동 시간이 인간성의 지표가 되었으며, 학생회 활동은 리더십의 지표, 상장 수와 수행 평가 점수가 창의력의 지표가 되었다. 학교생활기록부에서 양화되지 않은 교사의 정성 평가는 대학별 입시 사정에서 다시 등급으로 양화된다. 당시에는 성적으로 일렬로 줄 세우는 것보다는 평가 항목이 많아지고 다층적다면적 평가를 시행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개인이 가진 모든 재능과 역량을 총합해서 능력이란 이름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만들어 냈다. 평가 지표와 무관하거나 평가될 수 없는 능력은 무능력이 된다. 이렇게 해서 능력주의는 인증된 능력자와 함께 동시에 수많은 무능력자를 탄생시킨다.